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공지사항

세밑 거리에 뜨거운 인정이 그리울때-광주매일 12/3일자조회수 2800
김정자 (win1375)2014.12.04 10:27

세밑 거리에 뜨거운 인정이 그리울 때
이영일
송원대학교 교수


입력날짜 : 2014. 12.03. 19:56

12월의 거리는 늘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. 꽃도 나무도 햇빛도 없이 빈 가지에 앙상하게 달린 고엽(枯葉)처럼 쓸쓸하고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. 괜히 몸과 마음이 바빠지고, 시간은 얼마 남지 않은 세모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는 듯한 느낌이다. 아니 시간이 내 안에서 급속히 빠져 달아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. 특히 올해는 작년과는 달리 늘 보이던 미래가 보이지 않고 나도 모르게 먼 과거만 보인다. 어둑한 길을 총총히 걸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처마 끝에 매달려 제 키를 키워 가는 고드름처럼 힘겨워 보이는 한 해였다.

하지만 세모 풍경을 정겹게 자아내는 구세군의 자선냄비와 같이 12월에는 연탄 한 장처럼 누군가에게 뜨겁고 편안한 길을 마련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. 연탄재가 거의 사라진 오늘날에도 누군가를 위한 길을 다듬는 역할에 충실해지는 삶을 살고 싶다. ‘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./ 너는/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’라고 안도현 시인은 묻는다.

마지막 달은 나를 전부라도 태워, 님의 시린 손 녹여줄 따스한 사랑이 되고 싶다. 그리움으로 충혈된 눈 파랗게 비비며, 님의 추운 겨울을 지켜드리고 싶다. 그리고 함박눈 펑펑 내리는 날, 님께서 걸어가실 가파른 길 위에 서서, 눈보다 더 하얀 사랑이 되고 싶다.

옛날 겨울밤은 지금보다 유독 길게 느껴졌다. ‘뒷산 소나무 숲에서 메마른 바람이 어머니를 이끌고 왔습니다/ 젖가슴 같은 두 언덕에 머물러 손자며느리 보듬고 계셨습니다/ 나는 잠시 바람의 여정을 그려보며 고단한 삶을 내려놓았지요/ 어머니는 기차에 몸을 싣고 휴전선을 넘나들며 만주벌판까지 갔을 것입니다/ 어머니, 당신은 투명하고 보이지 않아서 사람 따위에 신경 쓰시지 않아 좋겠지요/ 당신이 묻히고 온 누런 먼지는 어쩐지 해묵은 솜이불 같았습니다/ 어머니는 매년 겨울이 오면 큰 방에 넓게 깔아놓아 솜이불을 뜯어냈습니다/ 풀 먹이고 다듬이질하여 바삭바삭 소리가 들리는 이불솜으로 걷어내/ 긴 겨울밤을 그 속에서 꿈을 꾸며 지냈지요/ 막걸리를 드신 아버지는 하얀 눈을 치우시고/ 푸른 대나무 숲을 빠져나와 봄을 맞이하셨지요/ 어느 날 긴긴밤 이불솜을 바느질하며 끄응하는 신음소리에 어둠은 더 깊어가고 있었지요/ 나는 그 소리가 빛을 잃고 뒷산 소나무 숲으로 날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습니다/ 달빛이 문지방 밑으로 들어오고 더 이상 바느질하지 못한 다음에서야/ 긴 겨울밤이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’. ‘어머니의 긴 겨울밤’이라는 자작시를 낳게 하였다.

세모가 다가오면 다른 무엇보다도 창밖풍경이 내 맘을 설레게 한다. 창가에 앉아서 흰 눈이 내리는 밖을 바라본다던가, 어느 카페에 앉아서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책을 읽고 싶은 그런 날, 아니면 어느 여행지에서 흰 눈으로 뒤덮인 산을 바라볼 때 괜시리 감성이 물씬 풍겨 나올 때가 있다. 주말이면 허물없이 만나 차 한 잔 마시면서 삶의 얘기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.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, 김치 깍두기 청국장 냄새가 좀 나더라도 별 상관없이 얼굴을 맞대는 사람이 내가 머물던 근처에 있었으면 좋겠다. 눈 내리는 밤이나 바람 불고 비오는 저녁에 너덜거리는 구두를 구부려 신고 만나러 가도 반기는 사람, 깊어가는 밤을 벗 삼아 서로의 공허한 마음도 확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고, 약간의 심술을 부리면서 남의 얘기도 주고받아도 말이 나고 탈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.

‘한 해가 저문다/ 파도 같은 날들이 철썩이며 지나갔다/ 지금, 또 누가/ 남은 하루마저 밀어내고 있다/ 가고픈 곳 가지 못했고/ 보고픈 사람 끝내 만나지 못했다/ 생활이란 게 그렇다/ 다만, 밥물처럼 끓어 넘치는 그리움 있다/ 막 돋아난 초저녁별에 묻는다/ 왜 평화가 상처와 고통을 거쳐서야/ 이윽고 오는지를…/ 지금은 세상 바람이 별에 가 닿는 시간/ 초승달이 먼저 눈 떠, 그걸 가만히 지켜본다’ 엄원태 시인의 ‘세모’에 나오는 시이다.

겨울은 입을 다물고 흐린 그림자는 말을 삼키며 삼라만상은 죽은 듯 마비되어 있다. 모든 물체들마다 자기만의 언어로 생각하고 반성하여 수행하는 것은, 그리운 봄에 수많은 언어들을 토해내기 위해서다. 찬바람 불고 눈보라치지만 어둠에 젖지 않는 별빛이 있고, 꽁꽁 얼어붙은 땅 밑은 새 봄을 장만하는 희망의 세계가 또 있기에 나는 그저 바람 불고 눈발 날리는 하늘을 바라볼 뿐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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